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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성묘하며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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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1.05.13 10:50 입력

정승열.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엄마가 승천하신 달이다. 어린이날 아침, 조반 후 아들과 함께 시골에 가서 부모님 묘소에 성묘하고 돌아왔다. 사실 지난 주말에 성묘하려고 약간의 음식을 준비해서 주차장까지 내려갔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서 미뤘었다, 시골 나들이는 한식 때 다녀온 뒤 한 달 만이다. 조금은 고루한 사고방식일는지 모르겠지만, 부모와 자식이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면, 찾아뵙는데 날짜를 따지고 시간을 정할 필요 없이 자주 찾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설과 추석은 물론 두 분의 기일에 찾아뵙고, 또 시골을 가거나 고향 쪽으로 출장 갈 때면 찾아가곤 한다. 이런 내 생각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혼자 다녀오곤 했는데, 몇 년 전부터 휴일에는 아들 녀석이 동행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러난 것인지 아니면, 아비의 행동에 작은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행해주는 것이 고맙다. 그럴 때면 아들이 운전하고 나는 곁에 앉는다.

 

유성 요금소로 들어서기 직전, 길가에 즐비한 꽃집에 들러서 카네이션 화분 세 개를 샀다. 부모님과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간 동생에게 줄 꽃이다. 부모님이 누워계신 선산 아랫마을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지만, 반세기 동안 집들이 도시처럼 모두 현대식으로 바뀌고 골목길도 널찍하게 변해서 초가집과 감나무가 어우러졌던 시골의 정취는 눈곱만치도 남아있지 않는다. 이렇게 나 자신도 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시골을 고향이라고 찾아가곤 하지만, 명절 때가 아니면 단 이틀도 지낸 적이 없는 시골을 오로지 아비의 고향이라고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골을 찾아가면서 차창 너머로 시골 들판을 바라보면서 아들에게 어렸을 적의 추억을 들려주곤 한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멱감고 송사리 잡고, 가을에는 풍성하게 익은 감, 밤, 대추 등을 따러 산을 헤맸던 추억도, 겨울철에는 누렁이와 함께 눈 덮인 산속을 헤매면서 산토끼며 꿩사냥을 했던 얘기도 들려준다. 이 모든 것들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식에게는 전혀 실감 나지 않는 옛날얘기에 불과하겠지만, 이것은 어쩌면 자식이 아닌 나 자신의 고향에 대한 정취를 반추하는 독백일는지도 모른다.

 

선산 밑의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올라간다. 한 달 전 한식 때만 해도 환했던 산길이 그사이에 녹음이 우거져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군데군데 진달래와 철쭉으로 화사하던 산기슭은 새하얀 아카시아꽃이 가득하고, 꽃을 찾아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올라 부모님 묘소에 도착했다. 한 달 사이에 봉분 위에 무성하게 자란 갯고사리며 잡초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부자는 잠시 흐르는 땀을 훔친 뒤, 상의를 벗은 뒤 목장갑을 끼고 봉분과 상석 주변의 잡초들까지 뽑아냈다. 그리고 두 분 묘소 앞에 갖고 간 모종삽으로 카네이션 생화를 정성스럽게 심은 뒤 물을 뿌려주었다. 상석 위에 귤이며 바나나, 초코파이 등을 은박접시에 담아놓고, 두 분에게 소주 한 잔씩을 골고루 뿌리면서 독백하듯 안부를 전해드렸다, 그리고 두 번 큰절하고 한번 반 배를 했다. 생전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님께서는 술이며 음식, 그리고 큰절을 올리는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기일에도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만 드리는 형제들의 의식이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렇게 참배하는 것이 올바른 예절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조금은 좋겠다는 생각에 몇 년 전부터 홀로 실행하고 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다른 능선 아래 누워있는 동생의 무덤을 찾아갔다. 살았더라면 이미 환갑을 넘겼을 동생이 백혈병으로 부모와 형제 먼저 하늘나라로 간 동생이다.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평생토록 가슴에 묻고 산다고 하는데, 생전에 엄마는 낭군의 무덤에서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동생의 무덤 앞에서는 통곡하곤 했었다. 동생의 무덤 앞에도 카네이션 화분 하나를 정성 들여 심은 뒤, 마찬가지로 소주잔도 한 잔 뿌려주고. 두 번 절하고 한번 반 배 했다. 전에는 동생에게 내가 죽으면 곁에 누워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자고 말하곤 했지만, 세상이 변해서 실천될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산길을 내려오면서 조금은 푸근한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부모님을 찾아뵙고, 동생도 보았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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