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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선진국 딜레마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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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1.07.22 11:04 입력

정승열 법무사.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Developing Countries Group)’에서 ‘선진국 그룹(Developed Countris Group)’으로 변경했다고 매스컴이 요란했다. UNCTAD는 개도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 증진을 위하여 설립된 유엔 산하 정부 간 기구로서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으며, 현재 회원국은 195개국이다. UNCTAD는 각국의 경제 규모와 지역 상황 등을 고려하여 아시아·아프리카 등 주로 개도국이 포함된 A그룹(99개국), 선진국 그룹 B(31개국), 중남미 국가가 포함된 그룹 C(33개국), 러시아 및 동유럽 그룹 D(25개국) 등 4그룹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1964년 3월 가입 이후 지금까지 A그룹에 속해 있다가 제네바에서 열린 마지막 날 회의에서 한국의 그룹 변경 신청 안건을 만장일치로 찬성한 것이다. A그룹에서 B그룹으로, 즉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된 것은 한국이 처음 일로서 국내 매스컴은 마치 커다란 경사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우선,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 것은 IMF가 1991년 가장 먼저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정했고, 두 번째는 1996년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1996년에 가입을 받아주었다. 또, UN에서 발표하는 각종 통계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전환한 것도 1996년이었고, 일류 선진국들만 가입할 수 있는 국제기구인 DAC와 파리클럽에도 모두 가입되어 있다. 세계은행이 2019년 7월에 발표한 한국의 GDP는 1조6,194억 달러(약 1,895조 원)로 세계 12위였는데, 2020년 8월 한국의 GDP가 세계 9위라고 했다. 2020년에는 1인당 GDP도 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추월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선진국’이라는 노미네이트는 국제회의에서 헤드 테이블 초대장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품위와 의무를 지켜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안은 것이다.

 

이미 우리는 평화유지군 활동과 환경 문제 등 선진국 의무를 요구받았지만, 우리 스스로 선진국임을 부정하면서 환경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여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2016년 11월 파리 기후협정에서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을 개도국이라고 주장했으나 각국의 격렬한 반발을 받고, 결국 ‘선진국 클럽’에 편입되어 온실가스 감축 37%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았다. 이번 UNCTAD 회의에서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된 이면도 알고 나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즉, UNCTAD는 4개 그룹 간 국익을 인정하고 있는데, 특히 A그룹에서 개도국의 이익을 주장하는 강력한 교섭단체 ‘Group of 77′이 있다. 각 그룹에서 특정 국가가 그룹을 옮기려고 하는 의사표시를 하면 회원국들이 협의하여 동의하면 전체 회의는 승인해주는 정도다. 우리의 이전 정부에서는 개도국이 받는 혜택을 고려하여 일부러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현 정부는 2019년 10월 WTO에서 “경제 규모가 선진국 수준으로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니, 이번 UNCTAD 총회에서 지위 변경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여 변경됐다. 즉, A그룹에서 B그룹 국가로 편입된다는 것은 ‘개발도상국 특혜’를 포기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2차대전 후 신생국으로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전무후무한 국가라는 점에서 자긍심을 느낄 만 한 일이지만, 그에 따른 의무와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어서 앞으로가 걱정된다. 살펴보면 아시아의 부국 싱가포르는 2019년 1인당 GDP가 6만5,000달러로 한국(3만2,000달러)의 두 곱이 넘는데도 아직 B그룹으로 남아 있고, 아시아에서 유일한 그룹 국가인 일본이 한국의 B그룹 이동에 찬성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메인 테이블에 앉는 대가로 얼마의 수표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정치 부분에서는 러시아, 중국, 필리핀 수준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는 경제 상황도 실상은 몇몇 재벌기업의 수출로 외형상 흑자를 기록하고 있을 뿐, 이면에는 장기불황으로 인한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극심한 빈부격차, 부동산정책과 탈원전 문제,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 형성 등 산적한 현안이 직면해 있다. 이제 선진국은 탄소중립, 투명한 정치 체제, 인권 보호 등을 실현해야 하고, 농업 부문에서 국가의 보호가 아닌 자유무역을 해야 한다. 문득, 1996년 선진국은 개도국 대비 관세율과 농업보조금을 대폭 낮춰야 하고, 개도국은 국제 자유무역 질서로 편입시키기 위해 약 150개 특별우대 조치를 받도록 하는 GATT에 대체하여 출범한 WTO에서 YS정부가 이른바 우루과이 라운드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을 자랑했지만, 농어업 등에 국가의 보조를 폐지해야 하는 의무규정으로 농산물 수매와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된 이후 농촌이 급격하게 피폐해지고 불과 1년 만에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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