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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아프간의 교훈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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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1.10.21 10:47 입력

정승열 법무사.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교훈 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그러나 역사를 반추하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오늘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2001년 911테러를 자행한 오사마 빈 라덴이 숨었다고 개시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지난 20년 동안 1,200조라는 천문학적 비용과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지만,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2의 베트남 패전을 답습하게 될까 두려워 작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이 알카에다 등 테러 집단과 단절하는 대신 미군은 14개월 이내 즉, 올해 5월 1일 이전에 철군하겠다’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을 잠정 중단했다가 탈레반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서 결국 “싸우지 않으려는 정부를 위해 미국이 더 이상 싸울 수 없다”는 명분으로 철군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침공했다가 일방적으로 철군한 미국은 곧 아프간전에서 패배나 다를 바 없다. 더더구나 합의에 따라 완전 철군을 하기도 전에 카불이 함락되고, 대혼란이 벌어진 것도 미국의 위신을 극도로 추락시킨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미군이 쫓기듯이 달아난 아프간은 탈레반이 다시 차지했다.

 

이제 아프간은 탈레반과 반 탈레반 간의 무력 충돌, 탈레반과 타지키스탄 간의 긴장,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의 세력 다툼, 주변 열강의 움직임, 국제사회의 부정적 반응 등 풀어야 할 숙제가 가득하다. 돌아보면, 아프간 사태는 아프간의 지정학적 특성상 강대국인 영국과 구소련과 완충지대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 아프간은 한반도보다 3배나 큰 나라이지만, 해발 5,000~7,000m에 이르는 산악지대가 국토의 75%나 된다. 또, 중국·파키스탄·이란·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여섯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게다가 파슈툰족(42%), 타지크족(27%), 하자라족(9%), 우즈베크족(9%) 등 14개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는 언어도 10여 개가 사용되고 있다. 3,800만 국민은 이렇게 민족·종교·사상 노선을 두고 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강대국이 설정해 둔 완충지대 안에서 아귀다툼을 해왔으며, 강대국들도 아프간의 이런 특성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해왔다.

 

영토상의 분쟁이 종교 및 인종 분쟁으로 확대된 인 팔레스타인 분쟁은 ‘중동의 화약고’라고 하는데, 이것도 강대국들이 제3국을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한 결과다. 즉, 1차 대전 때 영국은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싸우면서 영국에 협력하면 전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서아시아 지역에 아랍국가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아랍 하심가의 후세인과 이집트 주재 영국 판무관 맥마흔이 서한으로 약속했다. 또, 1916년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토 중 프랑스가 시리아와 레바논을, 영국이 이라크와 요르단을, 러시아는 터키의 동부 지방을 관리하고, 팔레스타인 지방은 공동 관리로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이크스-피코 비밀 협정을 맺었다. 그런데, 1차 대전이 장기화하면서 군비 문제가 대두되자, 영국 외상 벨푸어는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벨푸어 선언으로 전쟁비를 지원받았다.

 

이렇게 영국의 모순된 외교정책으로 땅 따먹기식 약소국 분할 음모는 2차 대전 후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유엔으로 넘어갔지만, 강대국이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유엔도 불공평한 결정을 하여 또다른 분쟁을 낳았다. 즉, 아랍인의 기득권과 이주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모두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연방제안과 아랍인과 유대인의 민족적, 정치적 자치를 허용하자는 분할안 중 유엔은 1947년 11월 분할안을 결정했는데, 유엔은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인이 35%이고, 이스라엘은 7%에 불과했는데도 이스라엘이 영토의 56%, 아랍국가가 44%로 분할한 것이 오늘날까지 팔레스타인 분쟁을 만든 요인이 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그리고 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들 사이에 1948년 중동전쟁이 벌어져 전후 아홉 차례나 반복되었다.

 

1964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아랍국가 건설을 위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창설하고, 이스라엘에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1988년 PLO는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체결했지만, 아직도 두 나라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1979년 12월 소련은 아프간 침공 후 자파 세력을 권좌에 앉혔는데, 미국은 소련의 침공 6개월 전부터 아프간을 돕기 시작했다. 1989년 2월 소련의 아프간 철수 이후 무자헤딘이 국민통합을 이루었다면, 아프간은 지금과 같은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소련에 반대한다는 큰 틀에서만 공감대를 이뤘을 뿐, 종교적으로 시아·수니·극단파·중도파 등으로 나뉘고, 민족도 갈라져서 집합점을 찾지 못했다. 탈레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아프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의 관습과 이슬람을 교묘하게 결합했기 때문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첫째가 국민통합이다.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팔레스타인과 아프간에서처럼 강대국에 의해서 나라가 요리된다. 또, 아무리 동맹이니 우방이 해도 자주국방을 이루지 못한 채 동맹국에만 의존한다면, 미국의 베트남 철수, 아프간 철수의 전철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강건너 불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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