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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마오족(苗族)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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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2.06.20 09:36 입력

정승열 법무사.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어도 지금까지 기자 조선설, 한사군 한반도설,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만주 지역에 널리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 정부가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자국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는데도 정부나 학계에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2017년 4월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당시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지난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개막식에서 중국은 오성홍기를 입장하면서 한복을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사람을 등장시키면서 56개 민족 대표자가 손을 잡고 유대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중국은 한복이 조선족의 전통 의상이며, 이름 또한 한복(韓服)이 아닌 한푸(漢服)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관영 CCTV 방송은 상모돌리기, 장구 연주 등이 중국의 고유문화라 하고, 김치도 중국 고유의 음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국내에서는 남이 얘기하듯 한 줄 뉴스로만 보도하는 실정이다.

 

중국은 1949년 정부수립 이후 10년마다 인구 조사를 하고 있는데, 2020년 인구 조사 결과 14억1,178만 명으로 세계 최대다. 이것은 2010년 조사 때보다 0.53% 증가한 수치로서 그중 한족이 92%, 그밖에 좡족(壮族), 후이족(回族), 몽골족, 다우르족, 예벤키인, 허저족, 만주족, 시버족, 조선족, 묘족(苗族: 마오족), 위구르족(维吾尔族), 티베트족(藏族) 등 소수민족이 있다고 한다. 소수민족 중 인구가 많은 네이멍구(內蒙古)· 광시좡족(廣西壯族: 계림)· 닝샤후이족(寧夏回族)·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시짱(西藏:티베트)을 5개 소수민족 자치구로 지정하면서도 이들이 독립운동을 벌이거나 인근의 동족 국가와 병합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 그 지역에 한족을 이주시키고 있다. 이런 한족 이주정책은 해당 지역 소수민족과 심한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족이 동북 삼성 지역에만 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구이저우성(貴州省)·윈난성(雲南省), 후난성(湖南省) 등 양쯔강 이남의 9개 성에 흩어져 사는 마오족이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끌려간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마오족은 2020년 인구 조사 때 942만6,000여 명으로 56개 소수민족 중 좡족, 만주족, 회족에 이어 네 번째로 많고, 구이저우성에만 전체의 48.1%인 429만 9천여 명이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과 라오스 등에도 100만 명 정도 사는 등 전체적으로 약 1,000만 명에 달하지만,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사실 묘족의 조상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많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탁록(涿鹿)에서 전쟁을 벌일 때, 치우의 연합체였던 묘족과 요족(瑤族)이 조상이라고 하고, 후한서와 남만전에서는 묘족의 분포 지역을 ‘만이지지(蠻夷之地)’라 했다. 그런데, 중국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마오족이 나타나기 시작한 송나라 때부터에 착안하고, 나아가 마오족의 전통문화와 풍습에 기초하여 마오족의 고구려 후손설을 주장한 것이다.

 

먀오족은 당말~ 청초까지 1000년 동안 사실상 방임상태에서 살아왔는데, 호주의 인류학자인 에디스(W.R.Geddes: 1916∼1989)는 “세계 역사상 끝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두 개의 민족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먀오족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이다”라고 말했다. 마오족의 고구려 후손설에 의하면 마오족들은 자신을 “가뤼(가로우)”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고구려가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려(高麗)"로 고친 것이 "고리→ 가뤼”로 변질된 것으로 보고 있다.

 

668년 9월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한 뒤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보장왕 등 20만 명을 끌고 와서 영주(寧州: 현 랴오닝성 차오양시)와 내주(萊州: 현 산둥성 옌타이시 라이쩌우)에 분산 배치했는데, 이때 왕족이나 귀족 등 영향력 있는 4만여 호는 고구려에서 가장 먼 양쯔강 이남으로 이주시켰다고 보고 있다.

 

마오족은 중국과 국경지대인 태국, 라이스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태국의 북쪽 치앙라이 근처의 밀림지대의 여러 소수민족 중 라후족(拉祜族: Lāhùzú, 납호족, 랍호족)은 그들의 조상이 흰 눈이 내리는 나라에서 살다가 전쟁에 패해서 포로로 끌려와 중국 청해성(靑海省) 농우에서 살았다고 한다. 또, 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 북부에서 마오족은 미군에 협력하여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미군 포로 구출에 큰 역할을 했다. 라오스에서 공산 반군 사이에 벌어진 내전 때도 라오스의 먀오족은 라오스 정부를 지원하는 미군의 비밀 용병으로 활약했는데, 베트남 전쟁과 라오스 내전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 미군을 도왔던 먀오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현재 미국에만 3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먀오족의 고구려 유민설에 관하여는 마오족이 시조로 섬기는 인물이 동이족의 치우(蚩尤)이고, 그들이 거주하는 후난성 서부 일대에 ‘고려(高麗)’라는 지명이 많다는 사실이다. 또, 주몽 신화와 비슷한 난생신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사는 형사취수(兄死娶嫂), 데릴사위(娶嫂婚) 등 남방 민족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구려의 독특한 결혼 풍습도 있다. 그 밖에 그들이 사용하는 '쌀'과 '벼'라는 말도 우리와 똑같고, 곡식을 타작하고 길쌈하는 모습도 우리와 매우 유사하다. 마오족의 남자들은 궁고(窮袴)라는 바지를 입는데, 이것은 고구려 벽화에도 많이 볼 수 있는 북방 기마민족이 말을 탈 때 입는 옷차림이다. 또, 그들은 까마귀 깃털로 만든 조우관(鳥羽冠)을 쓰는데, 고구려인들은 삼족오가 말해주듯이 까마귀를 신성시하고 유목민족처럼 새를 섬겼다. 일찍이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때 유명한 인류학자 페이샤오퉁(费孝通: 1910 ~2005) 교수는 먀오족은 중국 남방지역에 정착하면서 원주민과 피가 섞이기도 했으나, 만주족 다음으로 한민족과 유전자 특징이 가깝다고 밝힌 사실도 의미가 있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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