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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노욕과 쪼다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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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2.09.13 10:00 입력

정승열 법무사.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Ⅱ)가 9월 8일 오후 스코틀랜드의 발모랄성(Balmoral Castle)에서 96세로 죽었다. 여왕은 1952년 2월 아버지 조지 6세가 죽자 26세 때 왕위를 계승하여 무려 70년 동안 재위했는데, 작년 4월 70년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이 죽자 그 충격으로 더욱 쇠약해졌다. 8일 장남 찰스 왕세자가 즉시 “찰스 3세”로 왕위를 승계했지만, 그의 나이도 이미 74세다. 엘리자베스 2세의 원래 이름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Elizabeth Alexandra Mary)로 1926년 조지 5세의 둘째 아들인 앨버트의 큰딸로 태어났다.

 

사실 그녀는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왕위계승권자로서 웨일스 공에 책봉되었기 때문에 여왕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에드워드 8세가 1936년 두 번이나 이혼한 미국 하류층 여자와 결혼하자 왕실과 의회, 여론이 반대에 밀려 즉위 10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동생 앨버트 공이 즉위하여 조지 6세가 되었다.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이로서 영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의 실제 주인공이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이던 1945년 20세의 메리 공주는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하여 군대에 입대했다. 처음에는 취사, 매점 관리 등 비전투 업무에 배치됐다가 나중에는 탄약 관리와 수송 등을 담당했는데, 당시 그녀가 무릎을 꿇고 트럭 바퀴를 갈거나 보닛을 열고 수리하는 모습의 흑백 사진이 남아 있다. 영국 왕족 여성 중 군 복무를 한 유일한 인물인 공주는 군 복무 중 그리스 출신으로서 영국해군 중위로 복무하던 필립 왕자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필립 왕자는 1922년 군사혁명으로 추방당한 그리스 안드레아스 공의 아들로서 영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복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방계 후손으로서 재종숙·질녀 사이이자 빅토리아를 조상으로 하는 삼종 남매뻘이었고, 또 필립은 그리스 왕족으로서 덴마크 왕실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사운덴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이자 올덴부르크 왕가 계통이어서 두 사람의 결혼은 큰 논쟁이 되었다. 더더욱 필립은 영국 국교도가 아닌 그리스정교도였고, 또 영국의 적성 국가인 나치독일 지지자와 결혼한 누이가 있어서 영국민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조지 6세는 엘리자베스의 스물한 번째 생일인 1947년 7월 약혼을 발표하고, 그해 11월 20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필립 왕자는 그리스의 왕위승계권을 포기하고, 결혼 전날 ‘에든버러 공작’의 작위를 받는 형식을 거쳤는데, 이것은 왕족은 평민과 달리 법 위에 있다는 자만심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혼인한 엘리자베스 2세는 찰스와 앤드루 왕자와 앤 공주 등 2남 1녀를 낳았지만, 왕실의 잇따른 스캔들로 인기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다행히도 1981년 7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은 유치원 보모 출신에서 왕세자빈이 된 다이애나가 현대판 신데렐라로 주목받으며 세계적 관심을 끌었고, 또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를 낳으면서 왕실에 대한 영국민의 관심은 최고조에 올랐다. 그러나 결혼 15년 만인 1996년 이혼 원인이 찰스 왕세자가 결혼 전부터 사귀던 커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관계를 지속한 때문이었으며, 이듬해인 1997년 8월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적을 피하려다가 교통사고로 죽음에 대한 영국 왕실의 냉정한 처사에 국민의 원망은 영국 왕실과 찰스 왕세자에게 쏠렸다.


게다가 2005년 찰스 왕세자와 파카볼스의 재혼은 왕실 이미지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며, 왕실 폐지 주장까지 이어졌다. 또, 다이애나 빈이 낳은 두 아들 중 윌리엄 왕세손은 순탄한 왕실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해리 왕자와 흑인 출신인 여배우와의 혼인에 영국 왕실의 반대는 본래 여러 이민족으로 형성된 영국 왕실의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왔다. 게다가 여왕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2001년 당시 17세의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하자 수백억 원의 합의금을 내면서 영국 왕실의 명예 직함을 박탈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찰스 왕세자 역시 911테러를 주도한 빈 라덴 가문으로부터 수억 달러의 후원금을 받은 스캔들로 시선이 곱지 않다.

 

한편, 웨일스 지방은 1301년 에드워드 1세가 병합한 이후 장남 에드워드 2세를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으로 임명한 이래 웨일스의 군주이자 영국 왕위계승권자의 작위로 사용되었다. 에드워드 2세의 아들 에드워드 3세도 왕위계승자인 장남 에드워드에게 웨일스 공의 칭호를 내림으로써 영국에서 차기 국왕이 될 자가 웨일스 공이 되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 찰스 왕세자도 웨일스 공이었다가 찰스 3세가 됐지만,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파카볼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워낙 강해서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가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찰스 3세는 즉시 윌리엄 왕세자에게 웨일스 공의 작위를 줌으로써 후계자임을 공표했다. 이렇게 여느 집안만큼도 못한 대영제국 왕실을 생각하면, 엘리자베스 2세는 진즉 찰스 왕세자에게 왕위를 이양하여 영욕(榮辱)을 분산하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중국, 조선과 일본은 일찍부터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황으로 존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최근에도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도 2019년 5월 아들 나루히토에게 양위했다. 문득 고구려 장수왕의 손자 문자왕이 생각난다. 19세 때 즉위한 장수왕은 78년간 집권하다가 97세로 죽자, 그사이에 왕자 조다(助多)가 죽어서 손자인 문자왕이 왕위를 이었다. 세상에서는 제 분수를 넘는 것을 노욕이라 말하고, 제 몫을 얻지 못하고 죽은 장수왕의 아들 조다를 속칭 “쪼다”라고 하는데, 거의 1세기를 누린 엘리자베스 2세의 영국 왕실은 영국민과 세계인의 존경 대상이 아니라 수치(羞恥) 덩어리라는 생각이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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