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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삐에로(Pierrot) 처럼_정승열 법무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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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용 기자 | 2022.11.21 09:45 입력

정승열 법무사.jpg


매력적인 젊은 여가수가 요염한 율동과 함께 불렀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라는 가요가 한동안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삐에로(Pierrot)는 로마 시대에 군주의 옆에서 항상 시중을 드는 불쌍한 장애인이었다. 군주가 장애인의 시중을 받게 된 것은 장애인에게 자비를 베풀면 신으로부터 그 보답을 받아 불행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 지독한 조롱을 받으면 그 나쁜 조롱의 운명이 조롱하는 사람한테 되돌아간다는 믿음도 있어서 삐에로는 종교의식의 기능도 일부 수행했다.

 

그런데, 영화가 발달하기 전인 16세기에 로마의 희극극장에서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로 나타난 삐에로는 대개 젊고 용모가 단정하며 마음씨의 정직한 하인으로 나타나서 사랑에 실패한 연인 또는 동료들의 짓궂은 장난에 희생되는 피해자로 등장했다. 이때 삐에로의 의상은 주름 잡힌 목장식이 달려 있으며, 앞부분에 커다란 단추들이 달린 재킷, 헐렁한 바지, 챙이 넓고 펄럭이는 모자 차림이었다. 17세기에 파리로 전파되어 코메디 이탈린(Comédie -Italienne)이란 상류계층의 희극 전용 극장에서는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고, 원뿔 모자를 쓰고, 귀까지 덮는 두건과 지팡이만으로 들고 무대에서 대사 없이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만 관객에게 호소하는 캐릭터의 삐에로가 나타나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무언극 배우 장 가스파르 드뷔로(1796~1846)는 20년 동안 피에로 역을 맡아 연기했으며, 훗날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I pagliacci: 1892)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사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무언극(無言劇)은 삐에로와 비슷한 팬터마임(Pantomime)이 있는데, 팬터마임은 그리스어(μῖμος mimos) 즉 "모방자 혹은 배우"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팬터마임은 주로 크리스마스 때 어린이에게 보여주는 연극의 한 형식으로서 말을 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으로만 연기한다는 점에서 삐에로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없는 벽이나 문, 계단, 에스컬레이터, 로프, 풍선 등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몸짓하는 점에 삐에로와 구별된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왕이니 귀족이 아닌 부자들도 극장이 아닌 집에 삐에로를 고용하여 즐기게 되었는데, 군주나 주인이 화가 나서 분노를 참지 못할 때는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처형되기도 하는 파리 같은 목숨이었다. 그래서 피에로는 주인 곁에서 항상 웃고 있지만, 가슴속에는 언제 죽을는지 모른다는 슬픔을 안고 살았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도 삐에로와 비슷한 광대(Clown)라는 천민이 있었지만, 광대는 대체로 유쾌하고 활발한 이미지를 갖고 대사와 행동으로 관객을 웃겼지만, 삐에로는 대사는 없이 슬픈 얼굴로 무언극을 벌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법원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뒤에도 여전히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여러 사람과 만나서 상담하다 보면, 법원에서 수많은 사건을 처리할 때는 그것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의 전부로 알았다가 실제 사회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담긴 이런저런 얽히고설킨 얘기들을 실컷 듣고 난 뒤에도 정작 그들을 법률적으로 아무 것도 도와줄 수도 없다는 무력감에서 애태우는 때가 많다. 또, 더러는 자신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하나의 카타르시스로 여기는 것처럼 얘기하고, 홀홀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나 자신이 삐에로인지, 아니면 TV나 신문에 보도되는 풍요로운 세상과 다른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그 사람들이 현대판 삐에로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더욱더 가볍게 웃음 짓는 사회는 영원히 찾아볼 수 없는 이상향(理想鄕)일까?

 

맹수 같은 감성의 존재이자 신과 같은 이성의 복합적 존재인 인간이 벌이는 아귀다툼은 거의 매일 자식이 부모를, 또 자기가 낳은 갓난아기를 변기통에 넣거나 쓰레기장에 버리는 패륜적인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유치원생보다 어린 여아에게 못된 짓을 하고, 목숨까지 빼앗는 범죄가 매일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존재와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Pascal)은 팡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했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서로 돕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데도 이렇게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

[ 이선용 gosiweek@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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