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세상의 창] 정강의 변_정승열 법무사(대전)

  • 맑음원주7.8℃
  • 맑음보령8.4℃
  • 맑음광양시11.7℃
  • 맑음청송군3.7℃
  • 맑음상주11.5℃
  • 흐림강화6.4℃
  • 맑음인제5.5℃
  • 흐림세종8.0℃
  • 맑음창원15.2℃
  • 맑음고창7.5℃
  • 맑음문경7.6℃
  • 맑음고흥8.1℃
  • 맑음북부산10.0℃
  • 맑음정선군5.8℃
  • 맑음대구10.8℃
  • 맑음의령군7.6℃
  • 맑음홍천5.7℃
  • 맑음영덕12.4℃
  • 맑음고창군6.5℃
  • 구름많음청주11.1℃
  • 맑음철원2.9℃
  • 맑음봉화2.3℃
  • 맑음북창원13.1℃
  • 흐림홍성6.4℃
  • 맑음거제11.7℃
  • 맑음의성5.2℃
  • 맑음제천3.6℃
  • 맑음순창군7.0℃
  • 맑음고산16.1℃
  • 맑음이천7.7℃
  • 맑음통영13.0℃
  • 흐림천안5.6℃
  • 맑음동해8.2℃
  • 맑음태백5.8℃
  • 흐림수원6.8℃
  • 맑음대관령5.4℃
  • 맑음정읍7.9℃
  • 맑음거창6.9℃
  • 맑음영월5.7℃
  • 맑음북춘천5.0℃
  • 맑음밀양9.2℃
  • 맑음김해시12.4℃
  • 맑음북강릉6.6℃
  • 맑음진주6.6℃
  • 맑음양산시10.4℃
  • 맑음순천5.8℃
  • 흐림서울8.6℃
  • 흐림서산6.4℃
  • 맑음진도군8.7℃
  • 맑음남원7.2℃
  • 맑음군산8.0℃
  • 맑음전주9.6℃
  • 흐림인천10.3℃
  • 구름많음보은5.7℃
  • 맑음울진7.8℃
  • 맑음강진군9.1℃
  • 구름많음금산6.3℃
  • 맑음춘천4.8℃
  • 맑음장흥7.9℃
  • 맑음서귀포16.4℃
  • 맑음임실5.3℃
  • 맑음포항13.2℃
  • 맑음부산16.3℃
  • 맑음영천8.2℃
  • 맑음광주11.4℃
  • 맑음충주5.4℃
  • 맑음제주15.1℃
  • 맑음양평7.1℃
  • 맑음강릉8.8℃
  • 맑음추풍령10.0℃
  • 맑음속초7.4℃
  • 맑음보성군11.0℃
  • 맑음목포12.2℃
  • 맑음울산13.4℃
  • 맑음합천9.5℃
  • 맑음경주시7.9℃
  • 맑음울릉도13.3℃
  • 맑음함양군7.0℃
  • 구름많음동두천5.5℃
  • 구름많음백령도8.8℃
  • 맑음흑산도13.1℃
  • 맑음해남7.8℃
  • 맑음안동8.0℃
  • 흐림대전9.5℃
  • 맑음영주9.8℃
  • 흐림서청주5.4℃
  • 맑음남해12.5℃
  • 맑음여수14.4℃
  • 맑음부안9.1℃
  • 맑음완도12.0℃
  • 맑음장수4.3℃
  • 맑음성산12.5℃
  • 맑음구미9.4℃
  • 맑음영광군8.7℃
  • 맑음산청8.7℃
  • 맑음부여6.4℃
  • 흐림파주2.6℃

[세상의 창] 정강의 변_정승열 법무사(대전)

김민주 / 기사승인 : 2020-05-21 12:08:00
  • -
  • +
  • 인쇄
정승열.jpg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몽골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강화도로 천도했다가 42년 만에 항복하여 몽골의 부마국이 되고, 또 만주족이 침략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가 40일 만에 청 태종에게 꿇어앉아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있다. 하지만, 중국 송도 여진족의 금(金)과 맺은 정강의 변(靖康之變)은 국방을 소홀히 하고, 문치주의를 편 송의 업보로서 우리에게도 훌륭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은 당쟁과 환관의 정권 농단으로 안녹산, 사사명, 황소의 난이 잇달아 일어나더니, 마침내 군사력을 가진 절도사들의 할거로 큰 혼란에 빠졌다. 주전충(朱全忠)이 당을 찬탈하여 양(梁)을 세우고, 산시성의 이극용(李克用)이 진(晉)을 세운 뒤 양을 압도하더니, 후당(後唐)은 다시 후진(後晉)에게, 후진은 후한, 후한은 후주에 뺏고 빼앗기는 등 5대 10국이 들어서는 세력다툼 속에서 질서를 찾았다. 이때 후진의 석경당(石敬塘)이 후당을 멸망시키면서 거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만리장성 남쪽의 이른바 연운 16주(燕雲十六州)를 떼어줄 것을 약속했고, 937년 거란은 연운 16주를 차지했다. 이곳은 만리장성 남쪽인 지금의 베이징 일대였다.
 
조광윤이 5대 10국을 거쳐 송을 건국했지만, 연운 16주는 여전히 거란이 점유한 채였다. 태조 조광윤은 장군들의 세력을 억누를 심산에서 문치주의 정책을 펴서 나라는 점점 문약해졌다. 이때 만리장성 너머 북쪽 랴오허강 상류에서 몽골족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합하고 발해를 멸망시키더니, 국호를 요(遼)로 바꾸고 성종(聖宗: 983~ 1031)과 섭정하던 소태후(蕭太后)는 고려를 침략한 여세를 몰아 1004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송을 공격했다. 결국, 군사력이 없던 송은 수도 개봉에서 하루 거리밖에 안 되는 전주(澶州)까지 남하한 요와 회담하고 조약을 맺으니, 이것이 ‘전연의 맹약(澶淵의 盟約)이다. 전연이란 전주의 또 다른 지명이다.
 
1004년 송과 요가 체결한 전연의 맹약 4개 조는 아래와 같다.
 
⓵ 송은 매년 요에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보낸다.
 
⓶ 송의 진종은 성종의 모친(소태후)을 숙모로 삼고, 양국은 형제의 교분을 갖는다.
 
③ 양국의 국경은 현 상태로 하고, 양국은 포로와 월경자(越境者)는 서로 송환한다.
 
④ 송의 황제와 요의 황제는 형제 관계를 갖는다.
 
이 조약은 평소 하늘의 자손이라며 황제를 자칭하던 한족이 야만족으로 여기던 북방민족의 군주를 황제라 칭하고, 대등한 형제 관계를 받아들이고, 성종의 어머니 소태후와 숙질 관계(叔姪關係)를 간주하고, 또 매년 막대한 물자의 조공을 약속하는 굴욕적인 수치였다. 송은 이민족에게 재물을 주고 평화를 산 꼴이 되었지만, 체면을 중시하던 송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인적 손실에 비하면 그리 큰 손해가 아니라고 자위했다. 그렇다고 국방력을 키워서 대항할 정책을 취하지도 않은 채, 1125년 정강의 변으로 금에게 망할 때까지 120년 동안 현실에 안주하여 평화를 유지했다.
 
한편, 송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아골타가 부족을 통일하더니, 황제로 즉위하면서 국호를 금(金)이라고 했다. 그러자 못난 송은 오랫동안 한족의 영토였던 연운 16주를 되찾으려는 야심에서 금에게 접근하여 요에 지급하는 조공물을 금에게 주고, 연운 16주의 회복을 노렸다. 하지만, 금에게 약속한 전비를 지급하기는커녕 금에 쫓겨 달아난 요의 천조제(天祚帝)와 몰래 동맹을 맺고, 금을 협공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요의 천조제가 금에게 붙잡히면서 송의 계획이 발각되자, 금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송의 공격에 나섰다. 금이 송의 수도 개봉을 공격하여 흠종(欽宗)과 휘종(徽宗) 부자를 비롯한 황족, 관료 등 3천여 명이 포로로 잡으니, 이것이 정강의 변이다. 정강이란 흠종의 연호이다. 송은 금에게 굴복하면서 신하의 예를 취하고, 매년 은 25만 량, 비단 25만 필을 조공한다는 치욕적인 조약을 맺고 휘종은 아들 흠종과 금으로 끌려가고, 금은 장방창(張邦昌)을 송의 새 황제로 옹립하고 철군했다.
 
몽골족 요와 형제관계와 조공을 맺더니, 이제 또 만주족과 군신관계를 맺고 조공하게 된 것이다. 송이 동시에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갖게 된 것은 금이 쳐들어오자, 휘종이 제위를 황태자 조환(趙桓)에게 물려주고 강남으로 도망쳤다가 모두 붙잡혔기 때문이다. 진시황제 이래 유아독존적이던 황제는 이제 그 빛을 잃고, 야만족이라고 멸시하던 이민족도 세력을 쥐면 황제가 되었다. 정강의 변은 자주국방에 의하지 않고, 원조라는 이름의 조공으로 평화를 사려고 하는 못난 정치인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역사이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많이 본 뉴스

교육

경제

정치

사회

생활/문화

IT/과학

엔터

스포츠

자격증

취업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