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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창] 국혼(國魂)_정승열 법무사(대전)

이선용 / 기사승인 : 2023-03-20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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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 법무사.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사실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로 삼기 위한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복잡다단한 오늘의 지혜로 삼지 않는 민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해방 이후 70년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의 국토는 분단되고 그 반쪽마저 동서로,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서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다. 게다가 북핵 위기와 코로나 사태에 경기침체, 무역 적자까지 겹쳐서 총체적 위기를 상황은 거친 폭풍에서 등대를 잃은 난파선과 같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사학자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은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나라는 멸할 수는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아서 우리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이 존재하고 있다면, 반드시 형체가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라며, 국혼(國魂) 을 강조했다.

 

황해도 황주에서 서당 훈장의 아들로 태어난 박은식은 17세까지 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운 뒤, 초시에 합격하여 능참봉을 했다. 1898년 그의 나이 40세 때 상경하여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남궁억 등이 황성신문을 창간하자, 장지연과 함께 주필이 되었다.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정간되자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과 양기탁 등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했다. 1907년 4월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국권피탈 후 일제가 언론을 박멸하고, 수많은 우리 역사 서적을 불태우는 것을 보고, 평생 국혼(國魂)을 지키는 역사가로 살기로 결심했다.

 

1911년 4월 그는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만주로 망명하여 고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저술해서 민족정신을 깨우치게 했다. 즉, 동명성왕 실기, 발해 태조 건국지,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단조사고(檀祖事攷), 대동고대사론 등 수많은 역사서를 썼다. 1912년 상하이로 옮긴 후에는 대원군의 집권부터 나라가 망할 때까지의 근대사를 엮은 한국통사를 저술하고, 1919년 임시정부가 출범하자 동학농민전쟁에서 3·1 운동까지를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로 저술했다. 두 책은 각각 통사와 혈사라고 약칭되고 있는데, 그는 통사에서 지통심(知痛心)과 지치심(知恥心)을 격발하여 통(痛)을 없애고 치(恥)를 씻기 위한 독립 정신의 원동력이 되도록 저술했음을 밝혔다.

 

한편, 상해에서 신규식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한 박은식은 1924년에 국무총리와 대통령 서리가 되었다가 이듬해 이승만의 뒤를 이어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회갑연 때 내가 비록 늙었지만, 대한민국 건국사를 쓰고 죽겠다고 했지만 임시정부 활동에 전념하느라 저술을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 (Edward Gibbon)은 로마인이 아니면서 서양인들이 세계 문명의 원류라고 인식하고 있는 로마사 저술에 몰두하여 12년에 걸쳐 로마제국쇠망사 6권을 썼다.

 

기번은 어렸을 적부터 엄청난 독서광이어서 15세 되던 1752년 옥스퍼드의 모들린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의 지적 수준이 너무 높아서 그를 가르칠 교수가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에 대한 기대에 실망한 기번은 가톨릭에 빠져서 17세 때인 1753년 6월 세례를 받았다.

 

그러자 가톨릭교도가 되면 어떤 공직과 관직도 얻을 수 없는 영국국교 사회에서 아들의 처사에 격노한 아버지는 그를 스위스 로잔의 다니엘 파비야르 목사에게 보내서 공부하도록 했다.

 

20살 때 기번은 프랑스 칼뱅파 목사의 딸 수잔 퀴르쇼(Suzanne Curchod)와 사랑에 빠졌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헤어졌다. 그는 실망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이것이 그의 불굴의 의지였는지 외곬의 성격 탓인지는 알 수 없다. 연인이었던 퀴르쇼는 루이 16세 때 재무장관을 지낸 자크 네케르 (Jacques Necker)와 결혼했지만, 두 사람은 평생 친구로 지냈다.

 

마침내 기번은 가톨릭을 버리고 다시 성공회 신자가 됐고, 런던으로 돌아온 기번은 3년간 군 복무를 마친 뒤 27세 때 프랑스·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의 쇠퇴와 멸망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돈 많은 사촌 형의 도움으로 국회의원이 되어서 8년 동안 의원 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의회 연설대에 나가서 연설하지 않은 채 의석만 지킨 의원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문제가 터지자 식민지 편을 지지하다가 무역식민부에 관직을 얻게 되자 아예 입을 닫았다.

 

이때 집필을 시작한 기번은 1776년 2월 로마제국쇠망사 1권을 출간하고, 1781년에 2, 3권을, 1788년에 4~6권을 출간했다. 로마제국쇠망사 1~3권은 로마의 건국부터 480년경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약 300년간을 다루고, 4~6권에서는 이후 1,000년을 소개했는데, 그는 로마의 멸망을 정치적, 심지어는 지성적인 자유의 이념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는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써 로마의 물질적 쇠퇴는 도덕적 퇴락의 결과이자 상징이었다고 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기번을 일약 유명 인사로 만들어 주었지만, 오늘날 그의 저술은 역사서가 아닌 문학적 가치를 가진 고전으로 치부되고 있다. 박은식이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역사서들도 다소 불철저한 사실을 강조한 측면이 다분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과 참고할 수 있는 자료도 비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업적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굴곡진 우리의 역사를 누가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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