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혁(시인, 문화비평가 | 논설주간)
본지 “피앤피뉴스”에서 인공지능(AI) 시대 문학의 공존 방식을 물어왔다. “AI가 하는 문학을 진짜 문학으로 볼 수 있을까요? AI가 만든 작품을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도화된 데이터 조합에 불과할까요?”라며 도전적 물음을 던져왔다. 이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필자의 견해를 거칠게 표현해 보았다. (문학잡지는 화상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다른 평론가분들의 견해와 함께 실었다.) |
문: 챗GPT의 출현으로 문학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어떻게 변화해 갈까요?
‘챗GPT’는 인류가 현재까지 개발한 최대의 인공지능 모델로 문학창작까지 수행하고 있다. 대화를 통한 수정 보완이 가능하고, 검색을 스캔한 후 질문에 대한 답을 문장으로 구성해 내기도 한다. 한국어가 지닌 의미나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비판하지만 ‘챗GPT’는 매우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한국문학 데이터가 쌓이고, 그에 대한 학습이 실행되면 ‘챗GPT’가 대단한 작품을 창작할 때가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챗GPT’를 통한 창작물은 기존의 작품이 보여주는 표현과 내용을 학습하고 낮은 수준의 작품을 보여줄 따름이다. “문학 장르 중 은유, 반복, 표현 등 모든 것이 고려되는 시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챗GPT가 결코 인간의 창작물을 넘어설 수 없음”[김민지(2023), 「챗GPT를 활용한 시창작 방안 연구」]을 확인하기도 하고, 노엄 촘스키는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에 접근해 규칙성, 문자열 등에 기반해 문장을 만드는 첨단기술 표절 시스템(high-tech plagiarism system)”이며, 표절과 무관심, 생략, 표준적 주장을 자동으로 완성하고 요약하며,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거부하는, 즉 ‘악의 평범함’을 드러내는 것(『뉴욕타임스』, 2023. 3. 8.)이라고 비판한다. ‘챗GPT’가 창의성이나 윤리성이 결여된, 볼품없는 창작물을 내놓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챗GPT’는 왜 이런 결과만을 도출해내고 있는 것일까? 노엄 촘스키가 지적하듯 그것은 ‘챗GPT’가 기반으로 삼는 것이 결국 기존의 데이터라는 점에 있다. 기존의 문학 창작물의 데이터를 통해 찾아낸 일정한 패턴을 학습하여, 또다시 데이터들의 조합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창작자들이 깊은 사유를 통해 얻어낸,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창의적 사고와 표현이 산출되기 어렵다. 진정한 문학은 기존 문학을 뛰어넘을 때 산출되는 것이고, 작가만이 지니는 고유한, 실존적 서사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 AI가 인간과 유사한 문장 생성 능력에 도달했다고 해도 예술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AI가 기반으로 삼는 것은 데이터이다. 데이터가 쌓이면 좀 더 다양한 작품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데이터와 관련하여 한병철은 “인공지능은 개념 없이도 작동한다. 지능은 정신이 아니다. 사물의 새로운 질서, 새로운 이야기는 정신만이 할 수 있다. 지능은 계산하고 센다. 정신은 이야기한다. 데이터 기반 정신과학은 정신을 탐구하는 과학이 아니라 데이터과학이다. 데이터는 정신을 몰아낸다. 데이터 지식은 정신의 영점에 해당한다. 데이터와 정보로 가득한 세상은 이야기할 능력을 위축시킨다.”(『서사의 위기』, 다산초당, 103쪽.)라고 말한다. 이야기, 서사로써 표현되는 세계는 데이터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쉽게 풀어보면 인터넷에 널려 있는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어떤 정보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신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신이란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이 ‘자기’만의 이야기,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비슷비슷한 삶을 게시하고 공유하는 데이터 기반 사회에서 ‘자기’와 ‘나’가 없어지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을 담은 진술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때 떠오르는 것은 사르트르의 “요컨대 글쓰기의 예술은 어떤 변함없는 신의(神意)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을 선택하면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일 글쓰기가 단순히 선전이나 오락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사회는 무매개적인 것의 소굴 속으로, 다시 말해서 날파리나 연체동물과 같은 기억 없는 삶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388쪽.)와 같은 진술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하고, 기만적 언어를 고발하고,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와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라 한다면, AI가 보여주는 글쓰기가 진정한 글쓰기를 구현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AI에는 글쓰기의 주체인 ‘나’가 없으며, 주체가 생략된 글쓰기란 그저 데이터의 조합이나 나열에 불과할 것이다. 예술성은 글쓰기 주체의 실존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시대와 현실, 인류에 대한 성찰 등이 묻어나올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런 변화성 속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창출해나가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 특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문학예술이라면 과거의 재탕이며, 촘스키의 주장과 같이 “표절과 무관심, 생략, 표준적 주장”에 해당한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기존 데이터를 교묘하게 연결하여 그럴듯한 언어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작가 자체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고유한 세계를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AI가 생산한 창작물이 표절이며 문학적 진정성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들이 좋아하는 언어를 적절하게 취사선택하여 표현한 까닭에 인간의 지능으로는 그것의 진위를 판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 작품의 번역임을 모른 채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기존 작품들을 짜깁기한 소설이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일이 없지 않듯, AI 창작물 또한 그런 문제적 상황을 끊임없이 연출할 것임이 충분히 예견된다. 소리꾼의 절창이 귀명창 없이는 판별이 불가능하듯, 훌륭한 문학임을 증명할 눈 밝은 독서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AI 창작물이 위세를 과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문: AI와의 공생을 통한 새로운 창작 방식의 가능성이 주목받기도 하는데요.
AI 기술은 창작자와 공생한다기보다 창작자의 창작을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될 것임은 명확하다. 창작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화된 언어를 도구로 삼으며, 패턴화된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창작자는 거기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문학은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치·경제·문화 등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적 능력만으로 그 모두를 섭렵하기 어렵기 때문에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적여 정보를 취합함으로써 보다 정확히 시대와 인간을 그려내듯, AI 기술은 창작자의 훌륭한 파트너로 기능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컴퓨터가 있는데도 만년필만을 이용하여 글을 쓰는 작가가 존재하듯, 글쓰기는 단순히 정보와 지식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아날로그적 방식이 어떤 작가에게는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문학 창작을 어떻게 인식하고,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의 지점이다. 에덴동산의 신화를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수용하면서도 그것의 가치와 의미 부여를 달리하는 것과 같이 AI 기술이 창출한 세계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는 인간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문: AI 문학의 도입으로 기존 형태의 문학이 와해 될 가능성을 염려하기도 해요.
AI 문학의 도입으로 기존 형태의 문학이 무너진다고 보는 것은 문학이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가 아니라 창작 방법이나 생산·수용 방식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문학이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도 변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유행했던 전기(傳奇)가 과거에서 낙방한 문사(文士)들이 기존의 지괴(志怪) 작품들을 활용하여 좀 더 세련된 스토리와 표현으로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창출되었던 것처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로맨스의 기사담을 풍자하면서 근대소설을 열었던 것처럼 문학의 가치와 의미도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시문학이 중심이었던 중세에서 장편소설이 중심을 차지하는 근대처럼 미래의 문학도 AI와 결합하며 새로운 가치 지향과 생산방식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문: 인공지능 시대에 문인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작가들은 끊임없이 번뇌할 것이다. 문학은 도대체 무엇을 그려내야 하고, 왜 문학창작이 필요한가를 되묻게 될 것이다. 문학이 대중들의 소비재로 전락하고, 인간의 근원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 상황과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문학을 상품 가치의 차원으로만 접근할 테고, 쓴소리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그들과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이다. 진지함이 진부함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건너고 있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다. 지구 생태계의 파괴와 기후 위기, 인류의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은 계속될 것이며, 이런 문제적 상황을 내팽개치고 상업주의에 물든 문학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결국 문학의 정신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바른 방향을 선택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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