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변호사/ 법무법인 집현>
-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전원합의체 판결 -
1. 이 사건의 사실관계 및 재판의 경과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피해자 소유의 아파트를 명의신탁받아 보관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위 아파트를 피고인 명의로 이전등기하고 그 무렵부터 피해자를 위하여 위 아파트를 보관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은 자신이 기존에 부담하고 있던 채무의 변제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 위 아파트를 제3자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해줌으로써 위 아파트를 임의로 처분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양자간 부동산명의신탁에서 수탁자가 수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할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이 사건의 제1심은 피고인에게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부산지방법원 2016. 8. 12. 선고 2016고단1955 판결). 이에 피고인이 항소하였고, 원심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쌍방을 형사처벌까지 하고 있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의 명의신탁관계에 대한 규율 내용 및 태도 등에 비추어 볼 때, 명의수탁자인 피고인은 명의신탁자인 피해자에 대하여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 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하고 무죄로 판단하였다(부산지방법원 2016. 10. 27. 선고 2016노3127 판결). 이에 검사가 상고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상고 기각)
[1]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용대차ㆍ임대차ㆍ위임 등의 계약에 의하여서뿐만 아니라 사무관리ㆍ관습ㆍ조리ㆍ신의칙 등에 의해서도 성립될 수 있으나, 횡령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부동산실명법은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과 그 밖의 물권을 실체적 권리관계와 일치하도록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하게 함으로써 부동산등기제도를 악용한 투기ㆍ탈세ㆍ탈법행위 등 반사회적 행위를 방지하고 부동산 거래의 정상화와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도모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제1조). 부동산실명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의 명의로 등기하여서는 아니 되고(제3조 제1항),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가 되며(제4조 제1항, 제2항 본문),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명의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금지하도록 규정한 부동산실명법 제3조 제1항을 위반한 경우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쌍방은 형사처벌된다(제7조).
이러한 부동산실명법의 명의신탁관계에 대한 규율 내용 및 태도 등에 비추어 보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명의신탁자가 그 소유인 부동산의 등기명의를 명의수탁자에게 이전하는 이른바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계약인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부수한 위임약정, 명의신탁약정을 전제로 한 명의신탁 부동산 및 그 처분대금 반환약정은 모두 무효이다.
나아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무효인 명의신탁약정 등에 기초하여 존재한다고 주장될 수 있는 사실상의 위탁관계라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에 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아니할 뿐 이를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말소의무를 부담하게 되나,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처음부터 원인무효여서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가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로 말소를 구하는 것에 대하여 상대방으로서 응할 처지에 있음에 불과하다. 명의수탁자가 제3자와 한 처분행위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유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래 상대방인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명의신탁약정의 무효에 대한 예외를 설정한 취지일 뿐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 처분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어떠한 위탁관계가 존재함을 전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말소등기의무의 존재나 명의수탁자에 의한 유효한 처분가능성을 들어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법리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부동산실명법 시행 전에 이루어졌고 같은 법이 정한 유예기간 이내에 실명등기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그 명의신탁약정 및 이에 따라 행하여진 등기에 의한 물권변동이 무효로 된 후에 처분행위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3. 판례 해설
부동산명의신탁 제도는 부동산 투기와 탈세, 강제집행 면탈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이를 규제하기 위해 1995년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되었다. 종래 대법원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1항, 제2항에 따라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 물권변동은 무효이므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명의신탁자에게 있고, 명의수탁자는 등기명의에 의하여 그 부동산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양자간 명의신탁의 명의수탁자가 수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횡령죄의 본질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한데, 양자간 명의신탁의 위탁관계는 부동산실명법에 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것으로 형법상 보호가치가 없는 것이라면서 명의수탁자의 임의처분행위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은 종래의 견해를 변경함으로써 종래 대법원이 사안과 같은 경우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하여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자를 명의수탁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통해 보호해주던 법리충돌을 해소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명의신탁자가 매도인과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하되, 등기를 매도인으로부터 곧바로 명의수탁자 앞으로 이전하는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고(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매수인 명의를 타인 명의로 하는 이른바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왔던바(대법원 2000. 3. 24. 선고 98도4347 판결, 대법원 2012. 12. 13. 선고 2010도10515 판결 등), 이로써 모든 유형의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처분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판례의 입장이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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