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다음(next)”이 있기 때문에 지금 실패했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 김정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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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next)”이 있기 때문에 지금 실패했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 김정겸 교수

/ 기사승인 : 2015-10-20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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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絶望)이란 ‘바라는 바(望)’가 모두 ‘끊어 진(絶)’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절망상태에 빠졌다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함으로서 삶의 희망을 놓게 된다. 따라서 절망은 죄악이다. 

‘바랄 망(望)’은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의 바람으로서(所) 소망(所望)을 의미한다. 즉,‘望’은 ‘다음(next)’ 이다. Despire(절망)은 ‘de+spire’로 구성되어 있다. ‘de-’는 ‘없다, 부수다’의 부정접두어 이고 ‘spire’는 라틴어 ‘spirare(to breath)’에서 유래된 것으로 ‘숨 쉬는 것’을 의미한다. Despire(절망)은 ‘숨이 멈춘 상태’, 즉 영혼의 파멸을 지닌 단어 이다.

‘절망’도 “다음(next)”으로 전환시킬 긍정적인 사유방식이 필요하다. 숨이 멈출 때 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끝은 오히려 시작의 알림이다. ‘끝(end)’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시작의 싹이다. 왜냐하면 ‘end’는 ‘목적’의 뜻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目的)은 눈(目)이 무엇인가를 맞추기 위해(的) 그 쪽으로 향하여 있음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무엇인가 달성 하였다면 ‘다음’의 새로운 무엇인가로 눈이 향하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지향적이고 적극적인 인간이 된다. 눈앞에 펼쳐질 신세계를 향한 눈이 없다면 꿈이 없는 것이다. 꿈은 태양이다. 꿈을 가진 자는 미래(다음:next)가 환하게 열려 있다. 

빨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가수 조하문)


위대한 희망이 가라앉는 것은 해가 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인생의 빛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매일 희망이라는 태양이 떠오르게 하자 (Longfellow)

‘다음’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진보는 불가능 하다. Karl Popper는 “젊어서 진보가 되어보지 않는 자는 바보”라고 말한다. 생산적인 삶을 주도해 가는 것이 진보이다. ‘다음’에는 ‘다음’이 내포되어 있고 또 ‘다음’으로 이어 진다. 따라서 ‘다음’은 진보이며 생산적 삶의 원동력이다. ‘다음’은 희망이고 기대이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할 지라도 한 구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이 없는 일상은 어둡고 세상 저 멀리 도피하게 만든다. 삶을 살다보면 절망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절망하여 ‘다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희망도 없게 된다. 절망은 희망(希望)의 씨앗이라는 전환적 사유를 하자.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는 것이다(Albert Camus). 주체적 삶을 살아가야 할 실존인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렇다고 내던져진 채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비록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삶 자체가 절망적이더라도 더 나은 내일(next)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을 실망(失望)하며 살지 말자. 오늘을 失望하면 내일을 절망(絶望)하게 된다. 오늘의 행복은 내일의 희망이 된다. 

따라서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며 과거와 미래를 전부 포함하고 있는 총체적인 단어이다. 현재가 흘러가서 과거가 되는 것이고 미래가 된다. 현재를 충실하고 희망차게 산다면 과거를 되돌아 후회하지 않게 된다. 또한 미래는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 되어 우리를 비추어 준다. 

실망(失望)의 자각은 미래의 “나”이다. 무엇이든 열정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열정은 99℃의 온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1℃의 온도를 필요로 한다. 물은 99℃에서는 끓지 않는다. 1℃의 온도를 더 보태어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지금 그 1℃의 뜨거움이 필요하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우린 실망(失望)을 한다. 

독일어 '실망'(Enttäuschung)은 한자 그대로 희망을 잃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만, 미혹, 착각’을 없앤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실망이란 자신의 기만이나 착각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야 올바로 선 내일의 “나”가 있게 된다. 이것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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